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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의 와인스토리]메디치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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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3일은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주에서 르네상스를 주도한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태어난 날이다.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어려운성장기를 거친 후 프랑스의 앙리 2세에게 시집가 왕비가 된 인물이다.

토스카나의 주도 피렌체가 주무대였던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이끈 동시에 상공업 진흥을 선도함으로써 봉건주의 유럽에 상업자본주의를 일구고 퍼뜨린주역이기도 하다.

와인의 역사에서도 메디치 가문은 큰 획을 긋는 역할을 한다. 와인은 중세 유럽 흑사병의 창궐 이후 전염병을 피하기 위한 일상의 음료가 되었지만 생산은 수도원에 의해 주도되는 양상이었다. 이를 파티 문화와 결합시킨 주역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와인과 요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호화로운 궁정 파티는 바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 시작점에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존재한다.

상공업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에 시집갈 때만 해도 프랑스는 여전히 봉건주의가 압도하고 있었다. 문화적인 후진국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시집 보내면서 그녀가 문화적 괴리로 인해 고통 받지 않도록 요리사를 비롯해 수백 명의 시종을 동행시킨다.

앙리 2세가 즉위해 왕비로 지위가 격상된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왕과 더불어 파리에서 연일 성대한 연회를 개최하고 프랑스 궁정요리와 파티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와인과 음식을 매칭시키는 관행이 만들어지고 파티가 생활화됐다.

프랑스 국왕은 봉건 영주들을 초청, 화려한 궁정 파티를 자주 열어 그들의 위상을 과시했다. 연회의 규모와 화려함은 영주들의 질투심과 경쟁심에 불을 지른다. 영주들은 국왕이 파티를 열 때마다 요리사 등 수행원을 대동해 그들로 하여금 요리와 파티 양식을 배우게 하고 자신의 영지에서 유사한 파티를 개최한다. 이렇게 해서 파티 문화는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와이너리가 번성하고 귀족들이 와이너리를 소유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프랑스의 큰 궁전은 거대한 정원 너머에 본궁이 자리하고 양 측면에도 규모가 큰 부속 건물들이 있다. 이 부속건물은 당시 봉건영주들이 대동한 수행원들의 숙소로 쓰였다. 프랑스의 궁전 구조는 와인과 파티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는 그래서 와인과 음식문화에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역으로, 연일 이어지는 파티와 극심한 낭비로 인해 귀족의 타락과 재정의 피폐를 초래, 결국 프랑스 혁명을 야기하는 동기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조민호 편집국장(m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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