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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트렌드 읽기] 필요한 강박은 '한가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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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비자가 서점 점원에게 책값을 물었다. 점원은 5달러라고 답했다. 소비자는 서점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책값을 다시 확인했다. 점원은 6달러라고 대꾸했다. 소비자는 잠깐 사이에 책값이 달라진 것에 대해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점원이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고 답했다. 점원은 자신이 독서를 하고 있는 시간을 의미 없이 빼앗은 것에 대해 일갈한 셈이었다. 이 점원이 100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이자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작성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말은 이 사람의 말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영화 '도둑들'에서 절도범 뽀빠이는 법 집행을 운운하는 형사들에게 '원래 법이라는 게 좀 느리지 않나'라고 빈정댔고, '이제부터 빨라지지 법이, 특별히 너한테는'이라는 대꾸가 붙었다. 중년을 넘기는 어른들은 '세월 참 빨라'를 입에 달기 마련이다. 사람이 체감하는 인생의 속도는 나이의 두 배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지 싶다. 그래서인지 떡볶이를 만들 때, 시험공부 할 때, 사업계획서를 쓸 때, 출장을 갈 때, 데이트 할 때, 자료를 찾을 때, 결혼준비를 할 때 등 모든 순간에 시간 절약은 필수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정말?

최근 개봉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시간에 대한 상상력을 담고 있다. 외계인이 가진 시간 리셋 능력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우연하게 외계인의 능력을 얻게 됐다. 하루를 리셋 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을 가지고,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이길 방안을 모색하는 데 여의치 않다. 시간을 다시 쓰면 잘 될 것 같은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결국 주인공이 택한 방법은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다. 시간을 쓰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감정적, 육체적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다른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영화에 숨은 메시지 중 하나가 그렇다.

패션시장에서 SPA란 화두에 쏟아 부은 시간의 성적표는 어떨까. 스포츠아웃도어 열풍에 편승시켰던 시간의 결과는 무엇인가. 지자체 활성화 명목의 홍보에 투입했던 시간의 산출물은 어디 있나. 어떤 강박에 휩싸여 시간을 쓰는 건 무위도식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원치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에 대한 시간을 또 써야 하는 연결고리 안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을러 질 때 더 많은 걸 볼 수 있기도 하다. 여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강박은 한가로움일지도 모르겠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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