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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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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덕노

상추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음식이다. 예전부터 농부의 밥상에서부터 구중궁궐 대왕대비의 수랏상에도 올랐다. 신분의 높낮음을 떠나서 누구나 상추쌈을 즐겨 먹었는데, 우리가 얼마나 상추쌈을 좋아했는지 고려 때는 원나라에까지 소문이 났다. 지금은 퇴색한 용어가 됐지만 가히 한식 세계화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쌈 싸먹기를 좋아한다.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은 커다란 잎사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쌈을 싸먹는다고 했을 정도다. 상추를 비롯해 호박잎, 배춧잎, 깻잎과 곰취는 물론 미나리쑥갓, 콩잎으로도 쌈을 싸 먹는다. 김과 미역다시마 같은 해초 역시 쌈 싸먹는 재료로 빠지지 않았으니 우리는 유별나게 쌈을 좋아한다.

▲ 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상추쌈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상추쌈이다. 성호 이익은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까닭은 쌈을 먹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조선시대에 벌써 상추쌈은 국민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추쌈은 한입 가득 싸서 볼이 메어져라 먹어야 제 맛이다. 때문에 점잖은 체면에는 먹기 어려웠을 것 같지만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도 상추쌈을 즐겼다. 승정원일기에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조리를 하지 않았으니 쌈을 싸먹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어지는 내용은 실수로 상추에 담배 잎이 섞여 들어갔으니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숙종은 그럴 것까지 없겠다며 용서를 했다.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 역시 상추쌈을 즐겼다. 여름날 불암천에 천렵을 가서 갓 잡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상추쌈에 밥을 싸먹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렇게 왕실 최고 어른부터 막강한 세도가는 물론 농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추쌈을 즐겼던 것인데 우리의 상추쌈 사랑은 속담에서도 확인된다.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는 말이 그 말이다. 상추쌈이 맛있는 계절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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