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의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루시드폴(38)은 단조롭지만 차분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싱어송라이터다. 23일 발매된 정규 6집 '꽃은 말이
없다'에서는 한층 더 힘을 빼 자연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 새 앨범 소박하고 서정적
새 앨범의 느낌은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지난해 북촌의 한옥으로 이사한 루시드폴이 세찬 비가 쏟아졌던 올 여름, 집 마당과 주변을 둘러 보면서 얻은 영감을 이용해
만든 곡들로 앨범을 완성했다.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꽉 찬 느낌을 주는 타이틀곡 '검은 개'는 집 앞에서 우연히 개 한 마리를 만난
뒤 적어둔 짧은 메모에서 탄생했고, '나비' '서울의 새' '늙은 금잔화' 등의 수록곡들도 루시드폴이 뜰로 날아든 나비와 비둘기, 키우고 있는
꽃들을 보면서 만든 곡이다.
1998년 미선이밴드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벌써 데뷔 16년째다. 스위스 화학공학 박사 출신으로 지난해
'무국적 요리'라는 소설집을 내는 등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쏟아 냈던 그가 일상에 눈을 돌려 작은 소중함을
추구했다.
"사람들은 작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경시하며 살아가면서 자신은 돋보이고 일등이 되고 싶은 강박이 있죠. 저 역시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음반 순위에서 1등을 하고 매 공연이 매진되는 것을 겪으면서 그렇지 못할 때는 속상함을 느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작은
것을 인식하며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연설명으로 "지난해 연말 공연이 7년 만에 매진이 되지 않아
나도 회사 사람들도 놀랐다"면서 "그 때 음악 외적인 부분에 대해 마음 정리를 잘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깔끔하고 서정적인
문체의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동시와 지난해 7년 만에 처음 보낸 1년 간의 긴 휴식도 자극이 됐다고 했다.
"노래는 느리지만 성격은
급해서 걸음이 빨라요. 혼자 사는 남자라서 밥도 맛조차 모르고 빨리 먹죠. 지금은 천천히 한 번에 하나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동네 한
바퀴 도는데 15분 걸리던 게 지금은 천천히 걸어서 25분이 걸리고, 밥도 꼭꼭 씹어먹는답니다."
◆ 유럽풍 사운드 새로운
시도
자연적인 일상을 둘러싼 소리와 풍경을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모든 트랙을 피아노·기타·콘트라베이스 등 어쿠스틱 악기들로 녹음했다.
특히 전자·전기 증폭음을 제외한 대신 바리톤 기타·세미-바리톤 기타·8현 나일론 기타 등 여러 종류의 기타를 사용해 음역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는 신선한 시도를 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 그는 "15년간 음악을 하면서 무언가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고민했다. 그렇지만 기타치면서 노래한다는 것만큼은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목소리에 변화를 줄 수도 없고 해서
기타 사운드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햇살이 돼주고 싶은 소망을 산뜻하게 노래한 더블 타이틀곡
'햇살은 따뜻해'와 '연두' 등 여타 수록곡에서도 지금까지 루시드폴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유럽의 재즈 마누쉬 풍 사운드가 새롭게
시도됐다.
"4집 때 재즈 뮤지션과 처음 작업을 시도했지만 그 때는 재즈의 느낌이 별로 없었어요. 이번엔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재즈 세션 중에서도 톱인 분들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멜로디밖에 없는 제 노래의 정서를 바로 캐치하고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주셨죠.
당분간은 이런 사운드로 앨범을 낼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사운드의 감상을 위해 이번 앨범을 CD로 들어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요즘 음원과 미니앨범이 대세라 50~60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 템포 늦춰서 편하게 죽 들어주세요."/탁진현기자
tak0427@metroseoul.co.kr·사진/안테나뮤직
제공·디자인/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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