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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모놀로그] 과거는 과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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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대 시절의 지인한테 연락이 왔다. 그 시절 몇몇 다른 이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사회친구'였다. 지난 십여 년간 따로 연락은 없었다. 우연히 그녀가 나의 측근과 술자리에서 만나 내 연락처를 알아내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반가움에 회신하며 몇 개의 문자메시지가 오갔다. 거기까진 좋았다.

옛 멤버들끼리 한 번 뭉치자고 말한 대목에서 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거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곧 버릴 명함이나 주고받으며 '언제 한 번 보자' '다음에 한 번 뭉쳐야지' 라는 말, 우린 참 많이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반가운 건 첫 재회의 순간 정도가 아닐까? 막상 두 번째 만남을 성사시켜 만난다면 그것은 대개 부담스럽고 힘든 자리일 확률이 높다.

왜냐, 현재보다 과거를 공유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공유하기엔 그만큼 서로에게 이젠 관심이 없고, 현재 자기 상황을 얘기하다 보면 자기자랑이나 자기연민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면 자연히 과거 시절 이야기를 하나둘 퍼 올리거나 그 시절의 다른 지인들에 대한 현황공유나 하게 된다. 혹은 반대로 그게 '한 번 뭉치자'는 말이 '그냥 한 말'이면 얼마나 영혼 없는 대화인가!

솔직히 말했다.

"뭘 번거롭게 뭉쳐. 과거는 아름다운 과거로 남겨."

회신이 1초도 안 돼서 돌아왔다.

"나쁜 것,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의리 없다는 듯 그녀는 귀엽게 성을 냈다. 작금의 유행어 '의리'에 비장함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어떤 대의명분이나 남의 눈을 의식해서 무리하기 때문이다. 의리보다는 신뢰가 낫다. 신뢰는 늘 구체적인 형태로 '확인'을 안 해도 편한 그런 무리하지 않는 관계다.

"때 되면 만나겠지. 볼 사람은 또 어떻게든 보게 되잖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내게 야박하다고 했지만 그건 매정한 게 아니다. 정말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행여 '진심으로' 옛 지인을 굳이 먼지 털어 만나고 싶어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현재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가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임경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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