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옆 고상한 마력 뿜는
'낭만동네'
1960년대 풍경 사이 한곳 두곳 카페 늘어
커피공방·옥인길26 등 10여곳 조용한
인기
번화한 서울 한복판에서 옛것을 지켜내며 고상하게 늙어가는 동네가 있다. 통인동·체부동·효자동 등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이어진 경복궁 서쪽 마을 '서촌(西村)'이다. 요즘 같은 봄날, 느리게 걸으며 '광합성'을 하기 좋은 이곳은 깊숙이 파고들수록 보석 같은
골목길과 마주하게 된다. 구불구불 좁다란 골목이 옹색해 보이지만 고서점과 이발소, 쌀집 등 1960년대 서울의 정취와 낭만이 곳곳에 스며
있다.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서촌에 최근 커피 향이 더해졌다. 옛스러운 매력에 반한 '골목 여행자'들이 몰리면서 몇 해 전부터
허름한 국밥집, 분식점을 비집고 트렌디한 카페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 그런데 참 신기하다. 저마다 독특한 감성을 지닌 카페인데,
서촌만의 고풍스러움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햇살 좋았던 지난달 30일 '커피 로드'로 변신 중인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찾았다. 경복궁 지하철역 2번 출구에서 초록색 마을버스 '종로 9번' 길을 따라 종점인 '인왕산 수성동 계곡'까지, 느린 걸음으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골목길에는 10개 남짓한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복작대는 금천시장을 지나 새마을금고를 끼고 돌자 고소한
원두 볶는 냄새가 진동한다. 직접 볶은 커피 맛이 일품인 '커피공방' 매장이다. 고작 테이블 4개인 작은 매장 안은 전 세계 커피콩과 아기자기한
커피 소품들로 가득하다. 이곳의 공동대표 임하림씨는 "소박한 분위기의 서촌은 느리지만 꾸준히 변화하고 있는 동네"라며 "자신만의 문화를 가진
카페가 늘어나면서 또 하나의 서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변화가 반갑다"고 활짝 웃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다시
걷는다. '끼익~'.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마을버스 서는 소리를 뒤로하고 샛길로 빠지니 긴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대오서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1934년에 지은 한옥 건물로 외관과 간판이 60년 전 그대로다.
담장 낮은 한옥, 아기자기한 공방을 따라 들어선 '옥인길26'은
주소를 상호명으로 쓴 카페. 주인장 박설화씨 역시 서촌의 포근한 분위기에 반해 1년 전쯤 카페를 오픈했다. 인테리어도 멋스럽다. 현대식 외관과
달리 통유리창 너머 보이는 내부는 영락없는 한옥집이다. 매일 아침 8시 정성껏 내린 커피와 달콤한 쿠키를 파는데, 진한 아메리카노와 사케라토를
더한 '아이스 스위트 커피'가 인기다.
바로 맞은편 서촌 꼬뮤니따 '혁이네'는 카페라기보단 서촌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기타
강습에서 요리교실까지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곳에서 벌어진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녹차 등 음료 가격은 기본이 2000원. 그 이상은 자율
기부로 받고 있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동네 아이들 생일잔치, 주민들의 세미나 장소로 가게를 빌려주기도 한다.
'와이엠(YM)'은
이름의 영문 이니셜이 YM으로 같은 구영모·김유미 커플이 운영하는 카페다. 바리스타인 남자친구가 커피를 내리고, 사진을 전공한 여자친구가
아기자기한 소품과 자신의 사진 작품으로 실내를 꾸몄다. 손재주가 좋은 김유미씨는 틈틈히 모자를 뜨는데, 손님들의 호응이 꽤 좋다. 대개
3만~5만원 선에 팔린다. 커피, 차 외에 맥주 같은 주류도 판매한다.
향긋한 커피향을 따라 골목 구석구석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어느새 종점이다. 신축 빌라와 낡은 아파트 너머 인왕산 자락의 푸른 나무와 수성동 계곡이 펼쳐진다.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로 입구는 카페
'굿띵(goodthing)'커피가 지키고 있다.
운치 있는 빨간색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외할머니 품처럼 아늑한 인테리어가 반긴다.
바리스타의 정성이 깃든 핸드 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가 유명하다. 넓은 통유리창 너머 인왕산의 생기 넘치는 기운을 느끼며 쉬어가기 좋다.
/사진 손진영기자
pjw@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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