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일본이 제작한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과 괴수물을 즐겨봤던 지금의 중장년층 남성이라면, '마징가 Z'와 '고질라'가 인류를 사이에 두고 맞짱 뜨는 모습을 한 번쯤은
머릿속에 그려봤을 것이다.
11일 개봉될 '퍼시픽 림'은 바로 이같은 '꿈의 대결'을 그린다. 당연히 황당하겠거니 미리 속단하기
쉽겠지만, 웬걸! 눈 앞에서 펼쳐지는 로봇과 괴물의 말 그대로 이종(異種) 격투기가 보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가까운
미래,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태평양 심해속 구멍을 통해 나타난 카이주란 이름의 외계 괴물들이 인류를 위협한다. 전 세계 각국은 힘을 모아
카이주에 맞설 초대형 로봇 예거를 제작해 근근히 버틴다.
예거를 조종하는 파일럿으로 전투 도중 형을 잃고 전장을 떠난 롤리(찰리
헌냄)은 지구방위군 대장 스탁커(이드리스 엘바)의 부름을 받아 다시 합류하지만, 자신처럼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새 여성 파트너
마코(기쿠치 린코)가 못내 불안하다.
진화한 카이주들의 습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스탁커는 카이주들의 본거지에 폭탄을 심으려 하지만
그 곳까지 갈 수 있는 예거들은 태부족이다. 마침내 롤리와 마코, 스탁커와 건방진 파일럿 허크가 짝을 이뤄 적의 심장으로
향한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리면서도, 대단히 아날로그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연출자의 자세다.
메가폰을 잡고 시나리오와 제작까지 겸한 길예르로 델 토로 감독은 '헬보이' 시리즈와 '미믹',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으로 익숙한 멕시코 출신 거장이다. 리얼한 판타지를 추구하는 대가답게 애니메이션에서나 표현 가능할 법한 로봇과 괴물의 맨몸 한판 승부를
생생하고 거친 질감으로 그려낸다.
특히 인간 파일럿과 로봇이 드리프트란 신경 연결 장치로 한몸처럼 움직인다는 설정은 무척
고전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고 기발하며 색다르다. 난데없이(?) 우주에서 날아온 로봇들이 인간들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선행을 펼치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얼핏 닮은 것 같지만 아주 다른 이유다.
현재로선, 아니 당분간은 로봇을 앞세운 SF 블록버스터의
'끝판왕'으로 군림할 듯 싶다. 12세 이상 관람가./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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