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4년 문을 연 과천 서울대공원은 동물원을 비롯해 식물원과 현대미술관, 산림욕장과 캠핑장 등 다양한 시설로 시민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무기 개발기지'가 들어설 뻔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1960년대 베트남에 국군장병을 파병해두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자주국방'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다.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하기 힘든 베트남전의 수렁 속에서 집권한 리처드 닉슨 미국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제기하고 나선 탓이다. 닉슨 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미군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며, 미군은 앞으로 아시아에 대한 개입을 축소한다, 미국은 원조만 제공할 테니 아시아 국가들은 방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군이 철수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박 정권은 핵무기를 포함한 신무기를 자체 연구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그 개발기지를 세우기 위해 매입한 땅이 바로 지금의 서울대공원 터였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동지이기도 했던 김재춘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의 미묘한 관계와 국제적인 상황 등을 고려해 경기도 과천에 약 2백만 평의 땅을 매입하라고 했다고 한다. 다만 미국 정보기관이 눈치 챌 위험이 있으니 극비에 추진하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북한과의 국지적 충돌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나 신무기 개발기지는 끝내 그곳에 들어서지 않았다. 면밀히 조사해 보니 그곳은 북한 미사일의 유효 사거리 안에 들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무기 개발기지는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에 들어섰는데, 그 마저도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 때 미국의 압력을 받으면서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원래의 과천 터에 들어선 것은 북한 평양동물원의 규모를 능가하는 지금의 서울대공원이었다. 남북간의 군사 대결이 동물원 규모 대결로 바뀐 셈이었다. 마냥 즐거운 놀이공원 같지만 그 속에는 얼마 오래 되지 않은 한국현대사가 숨어있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 메트로신문(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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