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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권기봉의 도시산책] '멸종 위기'에 처한 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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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와 고시촌이 자리한 서울 신림동에는 유독 서점이 많았다. 그 중 몇몇 서점들의 경우엔 책을 사고 파는 곳을 넘어 친구들끼리 약속을 확인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친구들끼리 만날 일이 있으면 서점 게시판에 며칠 몇시 어디에서 보자는 식으로 쪽지를 남겼던 것이다. 오래된 사회과학서점인 '그날이 오면'이나 '광장서적'이 바로 그런 곳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곳 분위기가 영 어슬하다. 지난 1월 1억6000만원의 어음을 막지 못한 광장서적이 결국 부도 처리됐기 때문이다. 지난 1978년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쓴 책을 팔면서 생활고도 해결하자'는 취지로 문을 연 광장서적이기에 무상함이랄까 씁쓸함이 더하다.

이제 신림동에 남은 사회과학서점은 오로지 '그날이 오면'뿐. 서울대 앞에 있던 '열린 글방'과 '아침 이슬'은 이미 1990년대 중반에 문을 닿았고, 연세대 '오늘의 책'과 고려대 '장백서원'은 2000년대 초에 간판을 내렸다. 또 성균관대 '논장'은 2004년에, 중앙대 '청맥'과 동국대 '녹두'도 결국 지난 2011년에 모두 문을 닫았다. 대학생들이 당장의 취업 공부에만 매달린 나머지 책읽기를 멀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대학생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2012년 말 현재 대학생들의 월평균 독서량이 2.2권에 불과하고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대학생이 18.4%나 되는 건 사실이지만, 대학생 외의 성인 중에서도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이가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삶이 각박해선지 단문에만 익숙해선지 너도 나도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책을 읽는다 해도 할인 공세를 펴는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탓에 사회과학 서점, 아니 오프라인 서점들은 더 이상 발 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1997년 전국 5407개에 달했던 서점이 4년 만인 2011년 현재 1752개로,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니 말이다.

더욱이 강원도 고성을 비롯한 전국 30개 지역은 서점이 단 1개 뿐인 '서점 멸종 위기지역'이 된 지 오래다. 경북 영양과 인천 옹진 등 전국 4개 군에는 아예 서점이란 게 없다. 영혼과 지혜의 허기를 달래주는 책을 멀리 하고 그 토대가 되는 서점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창조'를 화두로 삼는 오늘날의 한국.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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