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사채업자로 웃음
빵빵 선·악 구분 힘든 연기에 강점 주위시선 덤덤…당구 프로급
배우가 선악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대단한 복이다. 드라마 '구가의 서'와 영화 '미스터 고'에 출연한 김희원(42)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극중에서의 표정이 너무
애매모호해 처음 보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말에 그는 "칭찬인지 험담인지 정말 애매모호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 울면서 협박…"의도적 코믹 아냐" 화제의 3D 영화 '미스터 고'에서 고릴라 링링과 소녀
웨이웨이(서교)를 괴롭히는 악랄한 사채업자 림샤오강으로 나왔다. 그런데 말이 악랄한 사채업자지, 하는 행동은 어설프고 불쌍해 오히려 폭소를
자아내는 캐릭터다. 특히 웨이웨이에게 돈을 갚으라고 울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늘어놓는 장면은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웃기는 대목이다. "그
장면은 중국어 대사가 1페이지를 넘길 만큼 워낙 길었던데다, 감정의 흐름상 NG 없이 한 번에 찍어야 했던 탓에 촬영 시작전 엄청나게
긴장했어요. 많은 분들이 어떤 느낌으로 연기했는지 물어보시는데, 전 협박이 아닌 애절한 하소연으로 해석했어요. (웃음) 일부러 웃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모두들 웃어주시니 저야 고맙고 뿌듯하죠."
이 영화에서 서교를 제외하고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 고릴라와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연기자이기도 하다. 극중 림샤오강은 링링의 호적수인 마운틴 고릴라 레이팅을 한국으로 데려온다. 이 과정에서 순한 성품의 롤랜드
고릴라 링링과 달리 난폭한 레이팅에게 혼쭐이 난다.
김희원은 "웨이웨이와 링링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만, 림샤오강은 기본적으로 레이팅을 두려워한다"면서 "고릴라로 채워질 빈 공간을 만지고, 또 바라보며 무서워하는 연기가 참
난감했다. 완성본을 보면서 '나랑 공연했던 고릴라가 저렇게 생겼구나'란 생각이 들어 감개가 무량했다"고 털어놨다.
▶
'빨래' 제작자 타이틀 뿌듯
영화에 앞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구가의 서'에서는 구월령(최진혁)의 친구인 소정법사를 연기했다.
기본적으론 착한 인물이지만, 시청자들은 중반까지 속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역시나 조금은 아리송하고 애매모호한
캐릭터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범죄를 일삼는 악당으로 열연했던 출세작 '아저씨'를 포함해, 이처럼 선악을 구분하기 힘든 연기에
강점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악인도 결국은 먹고 사는 인간이잖아요. 제 아무리 나쁜 X이더라도 사람 냄새를 풍기려 항상 애써요.
관습적으로 선과 악 어느 한 쪽에 치중하다 보면, 희로애락의 표현없이 작위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연기죠."
일상생활의 모습은 화는 잘 참지만,
기쁨은 잘 드러내는 쪽이다. 무명의 연극배우 생활을 오랫동안 거치고 얼굴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에 불편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무덤덤한 편이다. 프로 선수들과 어울릴 만큼의 수준을 자랑하는 당구장에서도, 조카뻘 중고생들 옆에 앉아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PC방에서도
유명해지기 전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중인 인기 창작 뮤지컬 '빨래'를 재미있게 봤다는 말에
특유의 알 듯 모를 듯한 무표정을 지우고 환하게 웃었다. '빨래'를 제작해서다. "배우와 더불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타이틀이 '빨래'
제작자죠. 2005년 단 두명의 유료 관객으로 출발했는데, 이제는 일본에도 진출하고 대본 일부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있어요. 제 연기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하하하."/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사진/황정아(라운드테이블)·디자인/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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