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자정을 막 넘긴 새벽. 이미 버스가 끊긴 지하철2호선 합정역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행사에 다니는 배모(31)씨는 "막바지 여름밤을 즐기고 싶어 친구들과 '심야 버스' N26번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밤이 계속되면서 1050원짜리 심야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야간 투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 운행을 시작한 심야버스는 N26번과 N37번 두개 노선으로 자정이면 깨어나 오전 5시까지 서울 도심 곳곳을 누빈다. 원래는 막차를 놓친 시민의 귀가를 돕는 목적으로 운행됐지만, 밤에도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야간 투어족들의 발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날 N26번 버스에는 오전 1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도 눈에 띄었다.
직장인 최모(32)씨는 "주말이면 여자친구와 홍대나 신촌에 내려 밤거리를 거닐거나 새벽까지 문을 여는 종로 맛집·카페에 들려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강서 차고지를 출발해 홍대·신촌·종로·동대문을 거치는 N26번 버스는 청계천의 시원한 밤풍경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종로 1가부터 동대문까지 어느 정류장에 내려도 청계천과 연결돼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다.
'올빼미 쇼핑족'인 대학생 이혜정(22)씨 역시 N26번 버스를 애용한다. 동대문에 내리면 도매시장에서 '새벽 쇼핑'을 맘껏 즐길 수 있어서다. 이씨는 "쇼핑을 마치고 표지판을 따라가면 낙산공원의 야경이 펼쳐진다"며 "산책 코스가 24시간 개방돼 달빛 아래 낭만도 만끽하기 좋다"고 말했다.
◆야식 맛집 찾아 '서울 버스 투어'
또 다른 노선인 N37번 버스는 '맛집 마니아'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서대문·한남오거리·강남·대치동·가락시장을 거쳐 송파 차고지에 도착하는 이 버스는 '맛 기행'을 떠나기에 그만이다.
연신내역에 내리면 손칼국수 포장마차 골목, 한남오거리에는 '한국판 심야식당'으로 통하는 이태원 장진우 식당, 신사동의 게장 골목까지 유명한 야식 맛집을 찾아 다니기에 최고의 노선이다.
주부 김명선(43)씨는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을 위해 'N37번 버스' 장보기 투어를 종종 나선다. 김씨는 "시원한 버스를 타고 야경도 즐기고 가락시장에 내려 새벽 도매 시장의 활기를 느끼다 보면 더위를 금세 잊는다"며 "싱싱한 제철 농수산물 역시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들의 새벽 귀갓길을 돕기 위한 심야버스가 무더위를 달래는 역할까지 할 줄 몰랐다"며 "8개 노선으로 심야버스 운행이 확대되면 더 다채로운 서울투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재용기자 hsoul38@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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