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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

[박성훈의 IT도 인문학이다] 내비와 대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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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디지털의 내비 '파인드라이브'가 안전운전을 강조한 DMB광고.

첨단 내비 맵 '2인1조' 노가다 완성품 

예전에는 여러 명이 여행을 갈 때 길을 아는 사람이 맨 앞에서 차를 몰았다. 길을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은 앞차의 꽁무늬만 쫓았다.

그러다가 교차로 신호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일행들은 뿔뿔히 흩어지기 일쑤였고 맨 앞차는 뒷차가 따라올 수 있게 도로 가장자리에서 비상등을 켠 채 대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뒷차는 보이지 않는다. 알고보니 비슷하게 생긴 차를 잘못 알고 따라갔고 일행은 반나절을 허비하곤 했다.

요즘은 이런 일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명이나 주소를 찍으면 가는 길을 상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용 단말기가 없어도 티맵, 올레내비, 김기사와 같은 스마트폰용 앱을 누구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실시간 교통정보는 물론 도착 예정시간까지 알려주는 내비가 고마울 따름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처럼 스마트한 내비가 이른바 '노가다'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즉 내비에 들어가는 지도를 제작하는 일이 21세기 첨단 IT환경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내비 맵 제작팀은 보통 2인1조로 구성된다. 한명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한명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달라진 간판이 있는 지 확인한다.

일정이 워낙 타이트하기 때문에 밥먹고 용변 볼 시간도 없다는 후문이다.

오늘 광화문 일대에서 작업을 했다면 내일은 종로3가 지역을 둘러봐야 한다. 2인 1조의 내비 맵 제작팀들은 이런 식으로 전국을 활보한다.

이들이 일벌이라면 사무실에서 일벌이 보내는 데이터를 처리, 보관하는 여왕벌이 있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데이터를 내비 맵에 최적화하는 작업을 하고 저장한다. 

국산 내비의 뛰어난 성능에 그리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는 1861년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후손이 아닌가. 

대동여지도는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도 정밀함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놓을 때 자체 지도를 만들었는데 대동여지도와 비교했더니 거의 비슷해 크게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일제는 김정호가 전국을 3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8차례 오르내리며 지도를 완성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사실 김정호는 기존의 지도를 수정, 편집, 집대성했을 뿐이었다. 즉 조선의 뛰어난 지도 제작기술을 인정하기 싫어서 '김정호 1인 천재 만들기' 술수를 부린 셈이다. 

대동여지도가 나오기 27년 전 김정호는 '청구도'라는 지도를 내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 만드는 사람들은 '업데이트'가 숙명인 모양이다.

  •  박성훈 기자(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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