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아직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진 직후,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MB정권 초기 소위 '비즈니스 프렌들리' 바람에
재계에서는 후계구도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기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정권초기와 달리 갈수록 대기업 옥죄기가 심해지고, 여기에
경제민주화 등의 반재벌 정서가 강해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런 전망은 사라졌다.
당시 재계의 예상을 깨고 단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진에 '과연 삼성'이라는 말이 나왔다.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작업이 시작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삼성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올해 인사에서는 '이서현 사장 승진'으로 세 자녀가 분할승계를
위한 스타트라인에 정렬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 규모 사장단 인사, 핵심은 이서현 사장
삼성이 2일 사상 최대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사장 승진 8명, 이동·위촉업무 변경 8명 등 총 16명 규모의 사장단 인사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성과있는 곳에 보상있다'는 성과주의 원칙을 구현하고, 삼성전자의 성공 경험을 계열사로 전파하는 한편, 사업재편과 신성장동력 확보 등
혁신을 선도할 인물을 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의 핵심은 이서현 사장의 승진이다. 그간 그룹내
패션사업을 주도한 이 사장이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함으로서,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를 축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사장 등 세자녀간 분할 승계를 위한 구도가 마련됐다.
삼성에버랜드는 현재 이재용 부회장이
25.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도 각각 8.37%씩을 갖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최근 그룹내
사업구조 개편차원에서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인수한 반면, 건물관리 사업을 에스원에 양도하고, 급식 및 식자재 사업은 따로 떼어낼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세자녀가 안정적으로 계열사를 지배할 전망이다.
특히 이런 구도하에 향후 이부진 사장이 중화학 계열사, 이서현 사장이 패션 계열사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 전자·금융계열사 지배 '완성형'
이번 인사에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전자·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도 관심거리다. 삼성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번 인사의 최대 특징은 삼성전자 출신의 약진이다. 특히 사장으로 승진한 삼성전자 출신들이 대거
계열사 사장으로 보직을 바꿨다. 삼성 관계자는 "이는 성과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계열사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전자금융 계열사 지배력 강화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번 인사에서
조만성,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이 각각 제일모직 대표이사,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이선종 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겼다.
▲이부진 사장 승진은 '언제'
이번 인사가 과거와 다른 점은 부회장 승진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7년 가량인데, 이번에는 대상자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당초 예상되던 삼성전자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차치해도
오너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경우에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사장 취임 후 2년 만에
부회장에 올랐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2010년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올해로 만 3년째다.
이는 최태원 SK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의 구속 등 사회적으로 재벌가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인사를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삼성그룹의 본격적인 분할승계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도 3∼4년 더 걸릴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김태균기자
ksgit@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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