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45)는 영화
'감시자들' 출연을 놓고 "얻어 걸렸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함께 출연한 배우는 물론 감독과 제작자 덕에 혼자 편하게 묻어갔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뒤 반응은 그렇지 않다.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을 지휘하는 황반장처럼 노련하게 영화 전체를 조율했다. 상영 4일 만에
120만 관객을 끌어모은 데에는 그의 조용한 뒷심이 톡톡히 작용했다.
▶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 결정… "우성이가
괜히 출연하겠다고 했겠어요?"
두 차례('실미도' '해운대')나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배우로서 자신만의 흥행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러면서 기대감을 담은 묘한 미소만 흘렸다.
"기술 시사를 보고난 프로듀서가 '지루할
수도 있다'고 말해 솔직히 걱정했어요. 영화를 본 다른 스태프들 중 가장 나은 반응이 '적당히 재미있다'였거든요. 단단히 각오를 하고 봤죠.
먼저 봤던 감독은 옆에 앉아 제 눈치만 봤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거예요. '어디가 지루하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2시간이 금방
지나갔죠."
촬영에 앞서 배우와 제작진이 만나 한 얘기는 "쿨하고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들자"였다. 템포와 리듬을 놓쳐서는 안되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이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언론시사 후 기자간담회 때 '재미있게 봤다'는 말을 처음 해봤어요.
중고등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고, (정)우성이 때문에 아줌마들이 극장에 대거 투입될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하하."
제작보고회 때부터
"책(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결정했다"는 말을 줄곧 한다. "4년 만에 한국영화로 돌아온 우성이가 괜히 출연을 결정했겠어요. 제작자인 이유진
대표도 믿고, 가장 핫한 여배우인 한효주까지 나온다는데요. 전 얻어 걸렸죠."
▶ 영화 인생 최초로 흰
머리 분장…"처음엔 반백 주장했죠"
말은 쉽게 했지만 황반장을 위한 준비는 철저했다. 자신의 나이 때에 딱 맞으면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라 판단했다. 안경을 고르고, 바꿔 쓰는 시점도 철저히 계산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흰머리로 등장한 것도 눈길을
끈다.
"강철중은 몸으로 뛰며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경찰이지만, 황반장은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인물일 거라 생각들더라고요. 편집된 부분
중 내부 고발로 강등된 내용도 있어서 더 그랬고요. 처음에는 반백을 제안했는데 제작진이 좀 당황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부각되지 않는 정도로만
염색을 했죠."
제임스(정우성)와 그를 쫓는 하윤주(한효주)를 비롯한 감시반원들이 치열하게 추격전을 벌이는 사이 황반장은 전체를
내려다 보며 지휘한다. 그동안 몸을 혹사하는 대표적인 배우였던 그는 "가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연기해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들 뚜렷한
색깔을 지닌 인물들이 이리저리 튀기만 할 수 있는 영화를 안정감 있게 끌고 간 건 그의 공이었다.
"완급 조절에 신경을 썼어요.
극중 지휘 차량 안에서 혼자 3일 동안 촬영하면서 '급하지 말자. 풀어져서 하자'고 되뇌였죠. 대사도 툭툭 내뱉으며 선수처럼 보이려고 했고요.
그런데 세 주인공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거의 없어서 어떤 영화가 나올 지 예측을 못했어요. 완성본을 보고는 배우들 모두 다른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을 정도니까요."
▶ 스타일리시한 영화로
원기 되찾아…"리얼한 작품으로 돌아갈래요"
'타워'를 시작으로 하반기 개봉할 '협상종결자'(가제)와 '소원' 등 올해만 네 편이
개봉된다. 몸과 감정을 혹사하는 캐릭터를 주로 해 왔던 그에게 이번 영화는 터닝포인트다.
"서른두 살에 영화 배우 일을 본격적으로
했는데 이창동·박흥식·강우석 등 강한 리얼리티를 중요시하는 감독들과 주로 작품을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지치더라고요. 나도 편하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을 하고 싶었고요. 예상치도 않게 '감시자들'이 그런 작품이 됐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시 리얼함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네요."/유순호기자
suno@metroseoul.co.kr·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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