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원'이 지난 주말
전국에서 44만4591명을 불러모아, 상영 12일만에 누적 관객수 171만9772명을 기록하며 흥행 순항중이다. 그러나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54) 감독은 작품의 성공을 만끽하기보다, 그저 다행이라고 여기는 듯한 표정이다. 평소 달변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상업영화 은퇴 선언을
3년만에 번복한 계기와 '소원'의 메가폰을 잡은 이유와 관련해선 예전과 달리 최대한 말을 아껴가며 아주 조심스럽게
답했다.
- 앞으론 함부로 은퇴 운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SNS에 글 한 번 잘못 올렸다가
그만…, 그동안 반성 많이 했다. 좀 봐 달라. (웃음)
― 처음으로 제작을 겸하지 않은
영화다.
제작비가 얼마인지도 모를 만큼 연출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 처음 연출 제의를 받고 나서 고민이 많았을 듯 싶다.
시나리오 자체만 놓고 보면 워낙
완성도가 뛰어나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재(유아 성폭행)가 소재인 만큼 매우 조심스러웠다.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 주인공 소원(이레)과 비슷한 또래의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다른 상업영화들처럼 소재와 관련해 자극적인
장면이 나올까봐 마음을 졸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 보고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이다. '잘
만들었다' '휼륭하다' 등과 같은 반응보다도 말이다. 촬영은 물론 전후 과정에 '불손한' 태도가 스며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었어도 흥행만을 위한 극적인 장치를 배제하지 않았다면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경구·엄지원을 비롯한 전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가 올바른 자세로 임한 덕분이다.
- 피해자의 후유증 극복에
초점을 맞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치유하는 일종의 '동화'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인 코코몽을 등장시킨 것도 그래서다.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친 소원이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가해자를 상대로 한 응징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도덕 관념의 주제 의식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오십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소원 역의 이레 양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연기 경험도 전혀
없었다는데.
눈빛을 보고 캐스팅을 마음먹었다. 잘 자란 아이들은 눈빛이 맑다. 이레 양이 바로 그렇다. 실은 이레 양의 부모님이
줄거리를 전해듣고 처음에는 출연을 반대하려 했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레 양 본인에게 의사를 물었더니, 이레 양이 "영화인데 어때"라며 답했다고
하더라. 이 모습부터가 얼마나 건강하고 훌륭하나! 촬영 과정에선 수시로 (이레 양의) 부모님과 상의하고 극중에도 나오는 상담센터를 찾아 자문과
상담을 구하는 등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이레 양이 만약 영화를 찍고 나서 마음을 다치면 그거야말로 정말
위험해서였다.
- 차기작이 궁금하다.
물 흘러가듯이 살고 싶다. 이 판에서 모든 걸 경험했다. 수 십억
원대의 빚도 져 보고, ('왕의 남자'로) 1000만 감독도 돼 봤다. 아무 준비없이 주어진 상황에 맞춰 그저 노력하겠다면 너무 무책임해
보일까. (웃음)/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사진/이완기(라운드테이블)·디자인/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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