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깡통계좌' 우후죽순…은행노조, 올 하반기부터 ISA판매 전면 중단할 듯
은행원에게 IS(극단주의 테러단체) 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다. 바로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다. 금융 당국이 '만능 절세 통장'이라며 국민재산증식 목적으로 적극 밀고 있는 ISA는 금융권 내 과당경쟁으로 치달으며 불완전판매의 발원지로 지목돼고 있다.
가입액 1만원 이하의 '깡통계좌'가 전체의 70%를 넘어서며 당국은 불완전판매 감시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내달 수익률 공개를 앞두고 은행원들의 실적 압박은 극에 달했다. 이에 전국은행산업노동조합협의회(전은협)는 올 하반기부터 ISA판매를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 ▲ 주요 은행이 일임형 ISA 판매에 나선 지난 4월 국민은행 여의도영업본부 ISA 창구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목적은 재산증식, 현실은 깡통계좌 양산
21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ISA계좌는 출시 3개월 만인 지난 10일 기준으로 ISA 계좌 수가 220만5000개, 가입금액 2조568억원으로 집계됐다. 계좌당 평균 가입금은 93만원으로, ISA계좌 1인당 연간 가입한도 2000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ISA의 1인당 평균 가입액은 출시 2주차 56만원에서 꾸준히 오르다가 7~8주차에 실적 압박이 심해지며 다시 50만원 대로 떨어졌다.
1만원 이상의 '깡통계좌'도 전체 계좌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금융감독원원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14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한 달간 은행권에서 개설된 ISA계좌(136만2800여개) 중 74.3%가 1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원 이하의 2만8100여개(2.0%)에 달했다.
이에 금감원은 1만원 미만 ISA계좌의 적정성 여부를 집중 점검해,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나 금융실명제법 위반이 없었는지를 검사키로 했다.
집중검사에 앞서 금감원은 최근 ISA 판매 은행과 증권사에 공문을 보내 ISA 감독 강화 방안을 전달했다. 불완전판매 등 불건전 영업 행위가 없도록 자체점검 등을 강화하고, 논란이 됐던 깡통계좌 등 그간의 계좌 판매 현황을 파악해 달라는 주문이다.
금감원의 검사 예고 탓에 실제 1인당 가입금액이 소폭 올랐으나, 내달 일임형 ISA 수익률 공개를 앞두고 금융권 내 경쟁은 다시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실적압박' 은행원, 불매선언까지…
ISA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은행원의 실적 압박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이에 전은협 소속 12개 은행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ISA 판매를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은행원들이 ISA 실적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불완전판매를 취하며 '깡통계좌' 논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현재 ISA는 지점 별로 할당량이 주어지며, 은행 KPI(핵심성과지표)에 실적이 반영되고 있다.
신한·KB국민·우리ㆍSC제일은행 등 12개 시중은행의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전은협은 올해 하반기부터 ISA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성학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ISA실적의 KPI 반영은 불완전판매 증가의 원인이될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과도한 경쟁을 일으키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정책적 상품인데도 불완전 판매 행태를 유도해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위원장에 따르면 은행 점포별 ISA 실적 목표는 500좌 정도로, 1인당 하루 1구좌 이상이 할당된다. 무리한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은행원들은 원천징수영수증 등의 서류를 구비하지 않는 고객을 위해 세무서에 가서 서류를 대신 출력해 오는 등의 불완전판매를 행하고 있다.
서 위원장은 "하반기 ISA 실적 목표가 또 과다하게 부여되면 불완전판매는 추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 상태에서 감독원이 은행에 ISA 불완전판매 검사를 시작하면 규정에 위배돼 중징계를 받는 금융노동자들이 속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은협은 지난주 금융감독원 일반은행국장을 만나 ISA에 대한 은행의 실태를 전달했으나, 구체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 이에 21일 오후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또다시 대화를 나눌 계획이다.
서 위원장은 "당국과의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은협 소속 12개 은행의 노동자 전체가 판매 중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며 "정무위나 국회에도 의견을 전달하고, 현 ISA실태를 전국민에게 알리는 이슈화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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