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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김민웅의 인문학산책]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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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어느 날 떨기나무가 있는 곳에서 불길이 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기이하게도,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순간,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백성들이 비통하여 아우성을 치는 구나. 네가 가서 이들을 구하라."

신의 뜻은 히브리인들이 제국의 지배 아래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에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유의 미래가 열리도록 일으켜 세우는 것에 있었다. 모세는 그 일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하늘의 사제였다. 그가 이집트 제국으로 돌아가 나일 강에 지팡이를 담그자 강이 피가 되어 흐른다. 나일 강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젖줄로, 제왕의 권력과 부의 근원으로 떠받들려 졌던 대하(大河)다.

그러나 모세는 그 권력과 부의 밑바닥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것이었다. 누구의 피였던가?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그들을 계속 희생시키는 현실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이 장면에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대탈출을 하게 되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을 저 압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일깨우신다. 자유와 해방의 절대자에 대한 기억을 이들의 집단의식으로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이 기억과 뜻을 마음과 몸에 새기는 인간과 집단은 결국 떨기나무의 불꽃이 된다. 하나님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신앙의 결과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 떠창조되었다는 믿음 대로다. 떨기나무는 미디야 광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키가 낮은 덤불숲 나무였다. 그건 힘이 없는 히브리 백성들의 처지 그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에 하늘의 뜻이 타오르면, 광채와 불길이 일어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대로의 형상을 취하시기 때문이다. 떨기나무 불꽃은 예수시대에 성령의 불로 모습을 바꾼다. 인간은 신의 뜻을 받아 살면, 그런 빛과 뜨거움을 지닐 수 있는 존재다.

모세의 시대 이후 출현한 예수가 회당에서 읽은 성서 이사야서의 핵심은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다.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세상은 사자와 양들이 함께 뛰놀며 누구도 다른 이를 해치지 않는 평화의 나라였다. 자유, 해방, 그리고 평화의 하나님은 압제, 속박, 전쟁의 현실과 맞서신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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