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바라보는 중견 연기자의
주·조연작이 같은 날 나란히 개봉되기는 배우층이 얇은 국내에서도 비교적 드문 경우다. 김해숙(58)은 2일 공개될 '깡철이'와 '소원'에서
철없는 엄마와 차가운 듯 따뜻한 성품의 아동상담소장 역을 각각 맡아 정반대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오간다. 자식이나 다름없는 두 편의 출연작이 흥행
다툼을 벌이게 된 것과 관련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무슨 운명의 장난이람, 어휴…"라며 안타까워했다.
▶ 상투성
느끼면 스스로 NG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출연 분량이 많고 비중이 높다 보니
'깡철이'의 흥행 여부에 신경이 더 쓰이는 듯 했다.
이제껏 수없이 많은 엄마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깡철이'의 순이 씨는 출연
제의를 단숨에 받아들일 만큼 매력적이었다. "극중 순이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아들 강철(유아인)이 악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죠. 세상에는 많은 엄마가 있지만 모두 다르잖아요? 항상 그렇듯이 의상부터 말투까지 모두 바꿔 출발했지만 쉬운 작업은 역시나
아니었어요."
치매로 조금씩 망가져가는 엄마를 연기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적은 상투성이었다. '내가 진짜로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변해갈까'란 마음을 품고 현실적으로 극중 인물에 접근했다. 조금이라도 상투성이 느껴질라 치면 스스로 NG를 외쳤을 정도다.
육체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웬만한 빌딩 높이의 굴뚝을 올라가는 장면에선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강철과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에선 교통사고의 두려을
견뎌내야 했다. "폐소공포증과 고소공포증이 있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은 물론 스키 리프트도 못 타요. 그런데 카메라만 돌고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게 됩니다. 배우 팔자를 타고나긴 했나 봐요. 하하하."
▶ 극중 아들 키우며
대리만족
지금까지 영화에서 신하균·원빈·김래원 등 여러 후배 남자 연기자들과 모자(母子)로 만났다. 이 중 유아인은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러나 아주 의젓하고 든든해 마치 큰 아들같았다고 했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힘들 때마다 뒤에서 꼭 안아주는 등 진짜
아들 이상으로 살갑게 굴었다.
실생활에서의 김해숙은 두 딸을 키우는 '딸딸이' 엄마다. 한 번도 아들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영화를 찍고 나면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들 아들 하는구나' 싶다. "극중에서나마 아들을 키우며 대리 만족하죠. 게다가 제가 만난
아들들은 다 잘생겼잖아요. (웃음) 그렇다고 딸들한테 불만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아들과 딸은 느낌이 조금 달라요. 아들은 키울 때 소소한
재미는 없겠지만, 듬직할 것 같더라고요."
▶ 정통 사극 출연하고
싶어
누구는 '뒤늦은 전성기'라고 한다. 박찬욱·최동훈 감독 같은 유명 감독들이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서일 것이다.
한참 어린 감독들이 쉬지 않고 찾는 이유를 본인 입으로 말해달라고 물었더니 "최 감독은 내가 호기심이 많고 소녀적인 감성이
남아있어 좋다고 하더라"면서도 "실은 인간성이 괜찮아서다. 내 또래 배우들치고 연기 못하는 사람 어디 있겠나"라며 눙을
쳤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는 많다. 더 할 나위없이 영광스러운 호칭이지만 배우로선 '국민엄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실은 있다.
중년의 팜므파탈이면 더욱 좋을 듯 싶다. 얼마전 찍은 패션 월간지 화보에서 일명 '폭탄머리' 파마에 진한 스모키
화장으로 변신했는데, 낯선 자신의 모습이 꽤 그럴 듯했다고 털어놨다.
또 요즘은 정통 사극도 다시 눈에 들어오고 있다. TV에선
수없이 자주 사극을 경험했지만. 스크린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출연 제의를 고대하고 있다. "전 일을 해야 컨디션이 좋아져요. 쉬고 난
다음날은 몸과 마음이 오히려 찌푸둥해요. 에너지가 떨어지면 주저없이 은퇴하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죠. 훗날 후배들이 '저 선배는 끊임없이
연기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해준다면 가장 기분 좋을 듯 싶어요."/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사진/황정아(라운드테이블)
·디자인/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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