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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사상 초유 재계 청문회, 기업들 “구시대적 청문회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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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린다. 이번 청문회에는 재계 총수들이 대거 참석하는 반면 최순실씨 등 정계 증인들의 출석은 아직 불명확한 상태다. /연합뉴스

"호통치고 몰아붙이는 청문회가 되면 안 될 텐데요…."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시작된다.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참석하는 허창수 GS회장을 포함하면 삼성, 현대기아차, SK, LG, 롯데, 한화, 한진, CJ 등 9개 그룹 총수가 한 자리에 모이는 셈이다.

5일 재계에선 9개 그룹 총수들이 모이는 청문회가 고성과 고함이 오가는 자리가 되진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이어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대부분의 총수가 고령에 증인 경험도 없어 긴장감과 압박감이 클 것이다. 실수가 이어질 수도 있다"며 "여야가 운영의 묘를 살려 진행을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그간의 청문회 풍경은 증인을 세워두고 호통을 치고 면박 주는 모습이었다. 핵심 문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의원들에게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당시 초선이던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 퇴장 이후 명패를 집어던지거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호통을 치며 신랄하게 몰아붙여 청문회 스타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기업들 입장에서 이런 풍경은 부담스러울 뿐이다. 검찰 조사에서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로 적시됐으며 구체적인 혐의도 나오지 않았지만 피의자 취급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조사 장면이 생중계되기에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의혹이 있다면 밝히는 것이 맞지만 총수들이 정치인에게 공격받는 장면은 해외에서 기업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재계 총수들이 외국 일정도 미뤄가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실히 임하는 만큼 인격적인 존중이 뒤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보호무역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 등 글로벌 경영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그룹 총수들의 해외 일정도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총수들이 이러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인수합병 대상을 물색하고 주요 고객사와 관계를 구축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조사와 특검이 겹치며 당분간 해외 출장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달에 1~2번은 중국을 방문하며 경영활동을 펼친 최태원 SK 회장 역시 당분간 해외를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향후 5년간 4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국정조사와 특검 준비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청문회를 준비하느라 월례 경영전략회의도 연기했다. 현대차는 5일, 기아차는 6일 경영전략회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모두 청문회 이후로 미뤘다. 정몽구 회장의 주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회의는 본부장급 이상 임원이 참석해 회사 주요 사안을 보고하고 미래 사업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다. 중요 현안이 논의되기에 생산, 판매, 품질, 연구개발 등 모든 부문 본부장과 공장장이 참석하며 정몽구 회장이 직접 주재한다.

하지만 청문회를 앞둔 정 회장이 연말 해외 법인장 회의와 내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등 굵직한 스케줄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어 경영 차질을 감수하고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79세로 역대 청문회 증인 가운데 최고령인 정 회장의 건강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009년 심장질환으로 개심 수술을 받았다. 심장을 직접 연 수술이어서 매년 정밀 심장 검진과 고혈압 치료를 받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국회 내에 전문 의료진과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여의도 인근 대형병원과 긴급이송체계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총수들은 국정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지만 7일 출석하는 증인 가운데 기업인이 아닌 상당수 증인들은 출석 여부가 불명확하다"며 "출석에서부터 갑을 관계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상황에 차이는 있지만 본사를 해외로 옮긴 한 IT 기업이 부럽다"고도 전했다.

한편 7일 증인으로 신청된 최순실, 정유라, 최순득, 장시호 등 최순실 일가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문고리 3인방',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출석 여부가 불명확하다. 불출석하더라도 처벌은 벌금형 정도로 그쳐 이들의 출석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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