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채 왕(king of debt)이다. 부채를 사랑하고 부채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한다. 미국의 빚이 늘어나 문제가 발생하면 국채를 가진 채권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지난해 5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CNBC 인터뷰)
트럼프는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국제금융거래에서 기본이 되는 돈)인 만큼 여차하면 달러를 찍어내 부채를 갚겠다고 했다. 또 국채를 찍어 다른 나라에 판 뒤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채무 재조정이나 금리 조정 등의 방법을 써 돈을 떼먹겠다는 놀부 심보도 여러 번 내비쳤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으로 강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다. '금융 굴기(우뚝 일어섬)'를 추진 중인 중국으로서는 달갑지 않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이 결정된 지난해 9월 "국제사회가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인정한 것과 동시에 SDR의 대표성과 흡수력을 증강해 국제 금융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달러 중심의 세계경제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G2(미국과 중국)의 통화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에 좋을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 국제 무역 거래 통화별 비중
- ▲ 통화별 글로벌 외환보유고 비중(위안화는 기타)
◆도전하는 中, '팍스 달러리움'은 죽지 않아
'차이메리카(Chimerica)'. 지난 2007년 미국 하버드대학 니알 퍼거슨 교수(경제사학)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에서 말한 신조어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퍼거슨 교수는 한쪽(미국)은 펑펑 소비만 하면서 부채가 늘어나 위기를 겪고, 다른 한쪽(중국)은 파트너에게 수출할 수 없어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는 "차이메리카는 이혼으로 향하고 있다"(Chimerica is headed for divorce)며 말을 바꿨다.
홀로서기에 나선 중국은 세계 2위의 독자적인 경제 대국이 됐다. 위안화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중국 위안화는 지난해 10월부터 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했다. 기축통화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만들었다. 달러화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체제를 양분하는 게 목표다. AIIB란 아시아 지역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국제금융기구다.
하지만 위안화가 달러와 힘겨루기 하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어보인다. 세계 경제 질서인 이른바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달러에 의한 경제 질서)이 여전히 건재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가 최근 "강한 달러가 우리를 죽인다"고 한마디 하자 달러 가치는 한 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트럼프의 한 마디에 엔화와 위안화, 원화 가치가 치솟는 등 전 세계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후 지금껏 전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고한 달러화 제국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지만 세계경제질서의 축은 여전히 달러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제 외환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9%이다. 달러(41.73%), 유로화(30.93%)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위안화는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국제결제에서 차지한 비중이 1.86%에 불과하다. 미국 달러(42.5%)와 유로화(30.17%), 파운드화(7.53%), 일본 엔(3.37%)에 이어 5위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같은해 4월 기준 거래비중도 총합 200% 기준으로 달러 88%, 유로 31%, 엔 22%, 파운드 13% 등과 격차가 큰 4%에 불과하다고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했다.
- ▲ BHC 수정법안(Bennet-Hatch-Carper Amendment)
◆환율조작국 지정땐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양국의 갈등이 환율문제로 옮겨붙는 상황이다.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45%에 달하는 징벌적 상계관계를 부과하겠다." 미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 중국을 '일자리 강도국' '환율조작국'으로 비난하면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엄포를 놨다. 취임식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가능성을 열어뒀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관세 장벽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대표되는 세계무역 시스템에서 개별 품목의 관세 인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 무역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수입 제품 전품목에 15% 이하의 수입관세를 매길 것을 권한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언되지 않는 한 적용 기간도 최장 150일간으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환율문제는 다르다.
미국은 지난 10월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중국을 '관찰대상국 (Monitoring List)'에 지정했다. 환율 정책 보고서는 미국 환율정책의 '슈퍼 301조'로 평가되는 '베닛·해치·카퍼(Bennet·Hatch·Carper·BHC)법'이 올해 2월부터 발효된 데 근거한 것이다. 핵심 취지는 통화가치를 끌어내리는 환율개입(인위적 환율인상)을 수출 보조금을 준 것으로 보고 보복하겠다는 얘기다.
지금껏 미국은 슈퍼 301조(포괄무역경쟁력법) 등을 동원해 세계 각국을 상대로 불공정 무역을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무역질서 속에서 힘의 논리에 따라 특정 국가의 환율정책에 족쇄를 채우려는 의도라고 해석한다.
미국이 압박이 커진다면 중국도 맞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조24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한국은 그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재무부는 작년 4월 한국을 환율 조작과 관련한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의 연간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02억 달러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중은 약 7.9%로, 환율조작국 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를 충족한 상태다.
만약 미국이 중국을 염두에 두고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완화하면 덩달아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관세·수입물량 제한 등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
UBS는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미국의 대 중 압박이 크게 강화될 경우 중국이 내년 중 위안화를 큰 폭으로 절하할 수 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통화가치 불안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와 대미 무역 흑자가 환율개입과는 무관하다는 체계적인 논리를 개발해 설득해야 한다"면서 "한미 FTA의 장점을 홍보하고 재협상 및 미국 탈퇴 등의 극단적인 시나리오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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