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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왕의 귀갓길 3인의 보디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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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 강사 손효선씨가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일대에서 서우리가 운영하는 '여성 안심 귀가 스카우트'와 귀갓길을 동행하고 있다. /손진영기자 son@
   
▲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가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역 입구에서 신청자 손효선씨를 만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손진영기자 son@

"평소에는 우범지역을 순찰하는데, '스카우트'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왔어요. 오래 기다리지 않으셨죠?"

지난달 20일 밤 11시20분. 서울 광진구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입구 앞으로 노란 조끼를 입은 3명이 달려왔다. 이른 더위가 시작된 낮과 달리 선선한 밤이었음에도 이들의 콧잔등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7일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발대식을 개최, 6월 본격 시행했다. 안심귀가 스카우트는 주 5일 동안 밤 10시부터 다음달 새벽 1시까지 귀가가 늦는 여성들의 안전 귀가를 책임진다.

광진구는 시범사업 지구 15곳에 포함돼 현재 22명을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로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날 스카우트 신청자 손효선(30)씨를 맞은 건 양승희(여·52)씨와 조광호(67)씨 임종훈(33)씨 등 3명이었다.





매뉴얼 대로 정중히 인사한 스카우트 멤버들은 신청자의 간략한 개인정보를 확인한 후 귀갓길 동행에 나섰다.

규정상 신청자와 스카우트는 1~2m 가량 간격으로 떨어져 걸어야 한다. 여성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거나 '왜 여성이 늦게 다니냐'는 등 훈계를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건널목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양씨가 신청자에게 살짝 다가갔다.

"원래는 떨어져서 걸으라고 하는데, 그게 더 어색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가면 가는 길도 즐겁고, 얼마나 좋아요."

신청자도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제가 스카우트 신청을 하면서 전화가 2번이나 끊겼거든요. 그래서 신청 취소할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이렇게 달려와 주신 스카우트님들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보면서 불쾌한 마음이 싹 가셨어요."





사실 손씨는 이날 스카우트 신청에 약간 애를 먹었다. 학원 수학 강사인 손씨는 기말고사를 앞둔 중학생 1개반 수업이 늦게 끝나 집에 가는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져 스카우트를 신청했다.

손씨는 친구들에게 들은 대로 '120 다산콜센터'를 통해 광진구청에 안심귀가 스타우트를 신청할 생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화가 두 차례 끊겼다. 손씨는 집으로 출발도 못한 채 120 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처음부터 다시 연결을 신청해야 했다. 광진구청에서는 "전화 연결이 많아 전화가 끊겼다"고 했다.



◆홍보부족·통화지연 '옥에티'

손 씨는 또 "전화 연결을 하면서 4명 모두에게 현재 위치와 사정을 말해야하는 게 가장 불쾌했다"며 "최종 담당 부서와 연결해주고 그 한 곳에만 스카우트와 만날 곳, 목적지를 말하면 되는 것 아니냐. 통화시간만 15분이 걸렸다"고 불평했다.

스카우트 임씨는 "아무래도 구청에서도 처음하는 사업이다보니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제야 찡그렸던 손씨의 미간이 펴진다.

대로변을 벗어난 스카우트 일행은 손씨를 가운데 두고 양 옆과 뒤 쪽에 포진한 상태로 손씨의 집으로 걸어갔다.





손씨 집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 1대가 지나가고 남을 정도로 비교적 넓은 도로다. 가로등도 곳곳에 설치돼 있고 양 옆으로는 단독주택과 4~5층 빌라 등이 빼곡히 늘어선 전형적인 주택지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낯선 것도 때로는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특히 한밤 중 낯선 길은 또 다른 두려움이다. 손씨는 새 집으로 옮긴지 6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길들이 낯설어 무섭다고 했다.

적절한 수다는 밤길의 낯설음과 '스카우트는 어떻게 믿냐'던 손씨의 의구심을 모두 풀어줬다. 약 12분 만에 손씨의 집 앞에 도착했다. 스카우트 조장인 임씨는 손씨에게 귀가 확인을 받고 또 90도로 깍듯하게 인사했다. 스카우트들은 "우리 첫 손님이셨어요. 다음에도 또 신청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손씨는 집에 도착해 2~3분 후 구청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스카우트 서비스의 마지막 절차로 귀가 확인이다. '스카우트 잘 받으셨나, 잘 들어가셨나, 불편한 건 없었나'하는 질문에 손씨는 처음 불쾌한 기분을 잊고 "네"라고 답했다.

/김유리기자 grass100@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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