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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영남권 분화 가속…정치따라 요동치는 '신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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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영남권 신공항 유치전(戰)'이 20년 논란 끝에 김해공항 확장으로 가닥이 잡혔다. 부산(가덕도)도, 경남(밀양)도 아닌 제3대안이 도출된 것이다. 하지만 신공항 유치 무산의 원인을 상대 지역의 무분별한 공격 탓으로 돌리면서 이를 계기로 영남권 지역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1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두고 20년간 치킨게임을 벌인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모두 거세게 반발, 영남권이 두 쪽으로 완전히 갈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PK 대 TK'의 갈등이지만, 실제로는 울산까지 5개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셈이다.

▲ 21일 오후 국토교통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 백지화를 발표하자 부산진구 부산상공회의소에 모인 가덕신공항추진 범시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떠난 자리에 '규탄'이라는 카드가 남겨져 있다./뉴시스
▲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결과 신공항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 21일 오후 대구 동구 대구상공회의소에서 강주열(앞줄 가운데) 남부권신공항 범시도민 추진위원장을 비롯한 소속 회원들이 용역결과 발표를 경청하며 허탈해 하고 있다./뉴시스

◆해묵은 영남 갈등…신공항 계기로 가속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20년 이상 계속된 영남권 갈등이 신공항 백지화로 극에 달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PK와 TK 간 갈등의 서막은 노태우 정권 말기 때인 1991년 3월 발생한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이다. 당시 경북 구미에서 약 30톤의 페놀이 유출돼 낙동강을 오염시키면서 최대의 공해사건으로 기록됐다.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며 평소 강 중·상류 TK 지역 공단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PK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이 사건은 대구시가 1990년 중반 경제 불황 타개 방안으로 내놓은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 무산으로 이어졌다. 낙동강 수질 오염을 우려한 PK 지역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이 사업은 2002년 끝내 백지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총 9명의 대통령 중 5명(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의 대통령을 배출했음에도 '역차별'에 시달렸던 TK 내 PK 반발이 형성된 것도 이때부터다. 18대 총선을 앞둔 2008년 3월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대구 지원 유세현장에서 'TK 15년 핍박론'을 제기,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2014년에는 부산은행의 경남은행 인수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우리금융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2013년 말 BS금융지주를 경남은행 인수 본입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경남지역민들은 부산은행의 경남은행 인수는 경제주권 강탈이라며 천막농성과 철야집회도 불사했다.

당시 홍준표 경남지사는 경남은행 인수를 강행할 경우 은행에 넣어둔 금고를 빼겠다고 경고, 정부와 청와대에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경남은행은 BS금융그룹으로 넘어갔다. 부산에 대한 경남의 정서가 악화된 계기다. 

◆'영남표'에 둔먼 여야, 영남 갈등 촉발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영남표에 눈먼 여야가 선거 때마다 신공항 공약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여야가 토건개발 공약을 남발했고 여기에 지역 이기주의가 가미된 핌피현상(자기 지역에 수익성 있는 사업을 유치하려고 하는 현상)이 접목되면서 분열을 초래한 것이다.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갈등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12월 27일 북항재개발종합계획 보고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적인 검토 지시로 점화됐다. 이후 2007년 이명박(MB) 한나라당 후보의 대선 공약 채택으로 재점화됐던 신공항 이슈는 2011년 3월 말 TK와 PK의 끝없는 갈등 끝에 백지화됐다.

MB정부는 당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을 무산시켰지만 영남권 갈등을 우려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참여정부의 공식 검토 이후 4년 3개월 만에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다. 

백지화된 신공항 유치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면서 촉발됐지만 정부는 21일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이라는 결론이 났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이 1990년 처음 제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영남권 갈등이 26년 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이란 제3의 선택이 '상처뿐인 결론'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신공항 이슈' 고차방정식으로 격상 

그러나 신공항 이슈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차기 대권 주자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 대표는 부산 출신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더민주 김부겸 의원은 TK가 지역 기반이다. 김해공항 확장 착공이 2021년 본격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대선을 전후에 신공항 이슈가 재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공항 건설이 풀기 난해한 고차 방정식으로 격상한 것이다. 여야 모두 김해 공항 확장 결정을 반기면서도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공항 백지화로 분노에 휩싸인 영남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 '영남권 눈치보기'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정치 지형에 따라 신공항 이슈가 요동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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