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종목이 있다. 태권도도 그중 하나다. 1988년 시범종목으로 처음 올림픽 무대에 오른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태권도의 종주국인 한국에게는 대표적인 '메달밭'이다.
태권도가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국내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바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태권도 웰터급 금메달리스트인 정국현이다. 1981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해온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으로 태권도를 전 세계에 알렸다.
처음부터 성적이 잘 나온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실력을 바탕으로 1980년에 한국체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낯선 서울 생활과 때마침 불었던 민주화 투쟁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제대로 못한 채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로 정점을 찍은 정국현은 곧바로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시범 종목으로 발탁되면서 대한태권도협회로부터 한 번 더 국가대표로 뛰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태권도에서 세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정국현이 올림픽 첫 대회에서 뛰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지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죠. 저보다 키가 20㎝나 큰 선수들을 상대로 멋진 경기를 보여줬습니다. 다만 결승전에서는 상대 선수가 기권을 하는 바람에 아쉽기도 했어요. 하이라이트인 만큼 멋있게 뛰고 싶었는데 분위기가 조금 식어버렸죠(웃음)."
물론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은퇴 이후 겪은 고된 여정이 있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 이후 끊임없이 가져온 고민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었다.
정국현이 지금 스포츠계에 바라는 것은 보다 글로벌한 인재가 많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종목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외국은 다 그렇게 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지난해 6월부터는 세계태권도연맹 기술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난 뒤 태권도 국제 경기 규칙도 바꿀 생각이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태권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1962년 전라남도 출생·전주체육중학교-전주체육고등학교(현 광주체육중학교-광주체육고등학교) 졸업·한국체육대학 체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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