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무는 것이 우리 전통인데 부럼용 견과류의 대표는땅콩이다. 다음으로 밤이나 호두, 잣, 은행을 꼽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옛날 문헌에는 대보름날 땅콩을 깨문다는 기록이 없다.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에도 부럼으로 밤과 호두, 은행, 잣, 무를 깨문다고 나온다. 땅콩 대신 엉뚱하게 무가 들어있다. 1925년의 '해동죽지'에도 땅콩은 보이지 않는다. 호두와 잣을 깨문다고 나온다.
대보름 부럼에 땅콩이 포함된 것은 1946년 발행된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이다. 여기에도 새벽에 밤, 호두, 잣, 무를 깨문다고 하면서 괄호 열고 요즘에는 무가 빠지고 대신 낙화생을 깨문다고 적혀있다. 낙화생(落花生)은 땅콩의 한자 표기로 이 무렵에야 땅콩이 무를 대체했던 모양이다.
예전 부럼에는 왜 땅콩이 없을까? 땅콩이 늦게 전해졌기 때문인데 조선 정조 무렵에야 중국에 간 사신들이 처음 땅콩을 구경하고 맛을 봤다. 귀국할 때 종자를 가지고 왔지만 재배가 쉽지 않아 19세기 중반에야 집에다 땅콩을 심었다는 기록이 보이니 널리 퍼진 것은 20세기 이후다. 때문에 20세기 초중반까지도 부럼에 땅콩은 보이지 않고 무를 깨물었던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콩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었고 아몬드는 최근에 전해진 견과류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조선 사신들이 땅콩을 처음 구경한 정조 무렵, 한양 남산에 이미 아몬드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땅에 아몬드가 땅콩보다 먼저 전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땅콩은 원산지가 남미이지만 아몬드는 서역인 페르시아다. 대보름 부럼과 관련된 뜻밖의 상식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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