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1-몬드리안/붉은 옷을 입은 여인/1908/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미술관 소장
몬드리안이 남긴 흔치 않은 여성의 초상화다. 작업실의 가구들을 흰색과 빨강, 검정색의 직선 이미지로 꾸몄던 그는 일상의 공간마저도 자신의 그림처럼 정리하던 남자였다. 마치 영화 '플랜맨'에서 모든 일에 세세하게 알람을 맞추고, 꼼꼼히 계획을 세우며 같은 형태의 안정이 평화라고 꿋꿋하게 느끼는 남자 주인공 '정석(정재영)'처럼 말이다.
그가 그린 여성의 초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대표작품 꽤 거리가 멀다. 1908년 경, 그가 30대에 그린 작품이다. 그 유명한 빨강, 노랑, 검정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절제된 추상을 시작하기 전인 초기시절에 그려진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에게는 없을 것만 같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스라하게 느껴져서 좋다. "내 평생 감정이 소모되는 사랑 따위는 안 해!" 라고 말했을 것 같은 남자의 숨겨진 첫사랑을 찾은 기분이랄까.
나에게 몬드리안이 남긴 여인의 초상화는 이렇다 할 여성과의 큰 스캔들 없이 살았던 화가의 연애사를 파헤치고 싶은 그림이다. 맞다. 그에게도 한 때 사랑으로 일상이 물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가사 트래제우스(Agatha Zetraeus).이 그림은 1908년 몬드리안이 아가사 트래제우스를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1872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1966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90년 이상을 살았다. 18세 되던 해에 암스테르담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그 곳에서 미술교사였던 몬드리안을 만난다. (몬드리안에게는 미술교사자격증이 있어 그 곳에서 학생들에게 데생과 유화를 지도했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이자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당시 몬드리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데 스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 전이라 도시의 풍경화를 자주 그렸는데 그녀의 그림들은 당시 몬드리안의 화풍을 닮았다.
- ▲ 그림2-아가사 트래제우스/자화상/1907년 경/pastel/ 45 x 30 cm
- ▲ 그림3-아가사 트래제우스의 풍경화
그러고 보니 영화 '플랜맨'에서 로봇만큼이나 계획적이던 정석(정재영)의 일상에도 귀여운 인디밴드 가수 소정(한지민)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즉흥적으로 변하며 일탈이 시작됐었다. 사랑이 그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몬드리안은 그녀와 동거를 하며 연인 관계를 지속했다. 그때 그린 작품이 위의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다. 그렇게 8년간 둘의 관계는 지속되었고 몬드리안이 암스테르담을 떠나 파리로 향하기 전까지 둘 사이는 문제가 없었다. 1908년 쯤 둘은 결혼도 약속한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더 큰 꿈을 꾸는 몬드리안은 자신의 나라인 네덜란드를 떠나 예술의 도시인 파리로 가고 싶어 했다. 영화 '플랜맨'에서 정석과 소정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었던 것과는 달리 몬드리안과 그녀의 결혼 약속은 새드엔딩으로 끝이 난다.
홀로 네덜란드에 남은 아가사는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 그와 함께 걸었던 도시의 풍경들이 그녀에게 작품의 소재가 된다. 파리로 떠난 몬드리안은 그 후 영국을 거쳐 2차 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그때 나온 그림이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와 같은 대작이다.
- ▲ 그림4-몬드리안/브로드웨이부기우기/127x127㎝/캔버스에 유채/1942-1943
하지만 둘은 40년 이상 꾸준히 편지로 소식을 전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작품에 대한 고민까지 나눴다. 암스테르담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위트레흐트라는 도시를 자주 찾은 그녀는 87세가 되던 1980년에 예술작품을 거래하는 화상을 만나 그림들을 정식으로 거래한다. 몬드리안에 비해 비교적 말년이 돼서야 세상에 화가로써 등장한 것이다. 2014년인 작년 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네덜란드 아머르 스포르트에있는 몬드리안 생가 박물관에서는 아가사 제트래우스의 전시를 진행했었다.
- ▲ 그림5-몬드리안/Evolution/1910-1911
몬드리안이 그린 또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 그림 속 세 여인은 몬드리안과 사랑했던 아가사 제트 라우스일까? 그와 그녀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며 평생을 지냈을까?
영화 '플랜맨'의 정재영은 한지민을 만나 계획적으로 짜여진 삶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와 사랑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그녀를 떠나 홀로 지내며 더욱 작업 활동에 전념했다. 몬드리안이 네덜란드에 남아 아가사와 계속 사랑하고 결혼했다면 그가 남긴 수많은 직선 가득한 역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글쎄, 아닐 것이다. 그에게 사랑은 흠뻑 젖어야 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기보다 정성껏 피해야 하는 소나기였을지 모른다.
- ▲ 그림6-몬드리안/Passionflower/1908
그가 그린 또 다른 초상화다. 그림의 제목을 보자. Passionflower(시계초) 덩굴성 식물의 하나로 1500년대 스페인 탐험대는 페루에서 이 꽃을 처음 발견한다. 그들은 암술머리가 십자가의 형태인 이 꽃을 보고 예수의 고난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허브도감》에 설명된 시계초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속명인 Passiflora는 라틴어인 'flor della passione'를 번역한 '정열적인 꽃'이란 뜻이다.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어깨 위로 시계초 두 송이가 살포시 피어난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녀는 몬드리안의 연인이었던 아가사 트래제우스일까? 안타깝게도 시계초의 꽃말 중 하나는 '독신'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몬드리안이 아가사 트래제우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었을까? 시계초의 꽃말이 그녀에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당신 곁에 계속 머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한 점, 그림은 위로다. 명화보기 좋은 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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