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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

자고 나면 버뀌는 신용등급, 시장 위축 등 부작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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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5일 현대로템의 제23-1 회사채. 시장 금리보다 0.82%포인트 높은 3.598%에 대량 거래됐다. 만기는 2019년 4월 29일으로 이례적이었다. 같은 달 24일에도 제22-2 회사채 10000억원어치가 시장보다 높은 금리에 거래됐다. 시장에선 재무구조가 악화돼 신용등급이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컸던 시기다. 

#. 지난 4월 장외시장에서 만기가 2년도 남지 않은 삼성중공업 회사채가 시장 금리(민평·민간 채권평가사들이 평가한 채권금리 평균)보다 1.26%포인트 이상 높은 금리(싼 가격)에 800억원가량 거래됐다. 평균 거래 금리는 4%였다. BBB+ 신용등급 회사채 가격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부정적' 전망에 이례적으로 싼값에 팔렸다는 지적이다.

잦은 회사의 등급 변동에 기업과 투자자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양 사태' 당시 위험신호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기업들과의 '검은 공생'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 온 신용평가사들이 너무 민감하게 등급에 손을 대면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미 회사채 시장에서 찾지 않는 기업도 늘었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기업은 투자자에게 웃돈을 주고 돈을 빌려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신용경색이 이어질 경우 경기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19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한국신용평가(KIS) 신용 분포는 긍정적 6개, 부정적 28개, 상향검토 1개, 하향검토 5개였다.

한국기업평가(KR)는 긍정적 15개, 부정적 27개, 상향검토 2개, 하향검토 3개, 유동적 1 개였다. 

NICE신용평가(NICE)는 긍정적 9개, 부정적 34개, 상향검토 1개, 하향검토 2개, 유동적 1개로 나타났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가격도 하락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랜드이다. 최우석 나이스신평 기업평가3실장은 "이랜드그룹은 높은 차입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익창출능력이 큰 폭으로 저하됐다"며 "영업을 통한 채무상환능력이 현저히 약화됐다"고 말했다.

이랜드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은 채권값 하락(금리 상승)으로 평가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우량채 대접을 받았던 AA급 이상 기업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신용등급이 해외 신평사들에 비해 한 단계 더 등급이 높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신한금융투자 김상훈 연구원은 "6월은 신용평가사들의 회사채 정기평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면서 "회사채가 5월부터 재차 순상환으로 전환됐고, 여름을 앞두고 발행은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은 기업의 재무 상태와 향후 성장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들은 당장 자금 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재계 한 재무담당 부서장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신용등급이 A- 이하면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조달 금리까지 높아지면 경영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불안감을 전했다.

기업 신용리스크는 가계나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신용등급 하락→투자 위축→실적 악화→소비 위축→경기 침체'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도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용등급 보유 업체 수는 1114개사였다. 이는 전년 대비 35개나 줄어든 것이다. 무보증회사채 신용등급 보유 업체 수가 줄어든 것은 지난 2004년 이후 12년만이다. 회사채 발행량이 줄어들면서 등급 보유 업체도 줄어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줄인 것은 신용등급 강등으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등급이 낮은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각은 우호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늦게 올리거나 내리면 '뒷북'이란 평가를 받고, 나름 고민해 등급 조정에 들어가면 '또 하냐'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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