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을 거친 뒤 더욱 아름다워지고 생기발랄해진 40대 여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전미선(43)이다. KBS2 일일시트콤 '일말의 순정'에서 골드미스 중학교 국어교사 김선미로 나와 생애 첫 코믹 연기를 경험한데 이어,
14일 개봉될 새 영화 '숨바꼭질'에선 낯선 자의 침입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려 애쓰는 중산층 가정주부 민지 역을 맡아 역시 처음으로 스릴러의 맛을
만끽했다. "갈수록 연기가 재미있어진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그의 얼굴에서 오히려 행복한 기운이 넘쳐
흐른다.
▶ 평범한 가정 주부 역할 처음
지난해 늦가을 '숨바꼭질'의 시나리오를 받고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민지 역을 제의받았지만,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체 불명의 여인 주희(문정희) 역이 내심 탐나서였다. "솔직히 민지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엄청나게 욕만 먹을 캐릭터죠. (웃음) 그런데 남편 성수 역의 손현주 선배와 (문)정희 사이에 끼어 있는 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더니 의외로 나쁠 것같지 않더군요. 쓸데없이 나서지 않는 대신, 극의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추는 데만 전력투구하기로 결심했어요.
결과물이 괜찮아 안심했답니다."
연기 생활 24년 동안 숱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도시 아파트에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를 연기하긴
의외로 이번이 처음이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의 시골 아낙('잘 살아보세') 내지는 동성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 남편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아내('번지점프를 하다')가 전부였다.
그는 "내 실제 생활, 내 실제 나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캐릭터를 이제서야 만나기 시작한 것
같다"며 "그렇다고 중산층 가정주부 연기가 쉽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캐릭터 하나 쉬운 게 없다"고 엄살 아닌 엄살을 떨었다.
▶ 시트콤 속 웃긴 전미선
'뒷얘기'
앞서 6개월간 시트콤에 출연하면서는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맛봤다. 코믹 연기에 서서히 눈을 뜰수록 '난 왜 이렇게 안
웃길까. 순발력이 없지…'란 고민에 뜬눈으로 밤을 새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힘이 돼 준건 함께 출연한 이재룡과 도지원의 격려였다.
후배인 이훈과 김태훈의 응원도 한몫했다. 나중에는 별 말없이 이들의 얼굴만 봐도 축 쳐졌던 어깨가 불끈 솟아오를 정도였다. "어쩌다 보니 제가
출연진 가운데 딱 중간 나이대였어요. 선배들을 챙기고 후배들을 이끄는 다리 역할을 도맡아야 했는데, 워낙 소극적인 성격이라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막상 해 보니 꽤 잘해내더라고요. (웃음) 물론 가끔씩 술값을 계산한 탓에 지갑은 가벼워졌지만요."
▶ '엄마'와 '여자' 사이
성장통
아들 출산 이후 출연했던 드라마들마다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황진이' '에덴의 동쪽' '제빵왕 김탁구' '로열 패밀리'
등으로, 개인의 욕심보다는, 아들에게 좀 더 좋은 경제적 환경을 제공하고자 이를 악물고 연기한 결과다. "엄마가 되고 나서 책임감이 커졌다고나
할까요. 어찌 보면 대단히 현실적인 이유로 (출산 이후) 복귀한 셈인데, 절박했던 제 마음이 통했나 봐요."
이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인 연기 내공은 물론 높아진 인지도까지 덤으로 얻었지만, 정작 전미선 본인은 여전히 성장통에 시달리고 있다. 또래의 여배우들이 대부분 그렇듯
'여자'와 '엄마'의 사이에서 향후 어디로 가야할 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해서다.
그는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선배들로부터
'여배우에게도 40대 중·후반이 진짜 전성기다. 그때부터 농염하고 성숙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란 조언을 자주 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털어놓은 뒤 "할 수만 있다면 '여자'와 '엄마'의 이미지를 함께 가져가고 싶다. 종착지에선 은은한 향기로 대중의 뇌리속에 오랫동안
남고 싶은 게 최종 목표"라며 활짝 웃었다./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사진/박동희(라운드테이블)·
디자인/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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