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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

최경수 KRX 이사장, '운수 좋은 날'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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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과 닮았다. 

최경수 한국거래소(KRX)이사장은 올 해 초 공공기관이란 수렁에서 KRX를 구해냈다. 시장참여자 모두가 공을 그에게 돌릴 정도로 바삐 뛰어 다닌 덕분이다. 그의 '행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삼성SDS 등 140개 기업을 상장시키며 기업공개(IPO) 붐도 일으켰다. 지난 11월에는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 전환키 위한 여야 합의도 이끌어 냈다. 시장에서는 최 이사장을 유력한 초대 지주사 회장으로 꼽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가 발목을 잡았다. 현진건의 소설 처럼 행운은 딱 여기까지 일까. 

◆최경수 이사장, 초대 홀딩스 회장의 꿈 물거품 되나

한국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지주사 전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좌초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폐회일에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소속 상임위인 정무위 법안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코스피·코스닥·파생상품 시장을 개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달엔 여야 합의까지 이뤄지면서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후 본사 소재지 규정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시하는 부칙 규정을 놓고 부산 지역과 비(非)부산 지역 의원간에 의견이 엇갈린 탓이다. 

정무위가 개정안에서 '거래소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본사 부산 설치'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대신 지주회사 정관에 '본사 부산 설치' 조항을 두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부산 지역사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부산 소재를 명문화하지 않으면 아예 개정안을 폐기하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부산 시민사회단체는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거래소가 혹시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관련 규정이 빠지더라도 지주회사의 본점이 계속 부산에 소재하도록 향후 정관에 명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부산 지역 의원들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날 정기국회가 문을 닫고 나면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올해 자본시장법이 통과되면 내년 중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마친 후 IPO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래소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제대로 속도를 내고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거래소의 상장 작업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주사 전환이 무산될 경우 한국거래소 IPO도 글로벌화도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과욕이었나…IPO 소화불량 

"올해 주식시장에 220개 이상 기업을 상장시키겠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7월 수정한 새 목표다. 연초만 해도 170개사 상장을 내세웠는데 목표치를 크게 늘린 것이다. 

13일 현재 올해 새내기 기업 수는 코스피 14곳, 코스닥 83곳, 코넥스 36 곳 이다. 총 133개이다. 

현 정부가 '창조 경제'의 일환으로 자본 시장을 키우겠다는 청사진에 발맞춘 것이다. 

하지만 거래소 내부와 시장에서는 '머릿수 채우기'식 상장에 우려를 제기한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성과주의가 지속된다면 부실기업 상장을 피할 수 없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 피해가 불거질 수 있다"면서 "결국엔 시장의 질이 나빠져 좋은 기업들까지 상장을 꺼리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무리한 상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1999년부터 거품이 꺼진 2002년까지 4년 동안 매년 100개가 넘는 기업들이 증시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1999년 한 해만 100곳 중 42곳이 상장 폐지됐다. 당시 상장기업들의 퇴출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가 188만명(24조7000억원) 달하는 것으로 시장은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1월 이후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 18곳 중 9곳(스팩 제외)이 상장을 연기하거나 철회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9곳) 이후 최대 수준이다. 

해외 기업들도 한국시장에 회의적이다. 올해 한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해외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2년 연속 해외기업 유치에 실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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