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의 얘기는 허구지만,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둑과 같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 경제, 사회, 기업, 가계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와 판박이 처럼 닮아 있는 것. 정부는 '위기론'이 과대 포장됐다고 주장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현재 경제 상황은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며 "그때처럼 연쇄적으로 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과 2018년의 한국경제 성장률을 각각 2.6%, 3.0%로 전망했다. 최순실 게이트 등 정치적 불확실성과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이유로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를 0.4%포인트나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는 OECD가 지난 6월 2017년 3.0%, 2018년 3.3% 성장률을 전망했던 데서 각각 0.4%포인트, 0.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OECD는 "한국은 수출 주도 성장에 의존하는 개방형 경제"라며 "2018년 3% 성장률을 달성하는 데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글로벌 교역이 더디게 회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급격한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민간소비가 '마이너스'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97년 1만2000달러를 넘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이듬해 절반 수준인 7300달러로 떨어졌다. 4.7%였던 경제성장률은 -6.9%로 곤두박질했다.
98년 1분기 최종 소비지출증가율은 10 % 넘게 감소하는 '쇼크'를 겪었다. 이후 3분기 연속 큰 폭 감소율(-10% 대)을 보이면서 소비 심리는 꽁꽁 얼어 붙었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버틸 힘이 있느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경제 전문가들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이미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던 STX·웅진·동양그룹은 기억속으로 사라졌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내몰렸다. 글로벌 해운사인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중이다. 동부그룹과 두산그룹 등도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전단식 기업구조와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하던 대기업들이 치명타를 입었다. 30대 재벌그룹 평균 수익률은 1996년 0.2%에 불과했고 1997년엔 -2.1%로 곤두박질 첬다. 1997년 초엔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이 잇달아 부도를 맞았다. 대우그룹은 공준분해 돼 '대마불사' 신화도 무너져 내렸다.
이런 잠재적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8월 무렵부터 아시아 외환위기가 번지자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신용등급을 깎아내렸다. 결국 11월부터 외국 채권자들이 국내 은행에서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지난 2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2.2%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80.4%)보다 낮은 수준이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건설 관련 수치들은 좋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지가 불투명하고 나머지 수치들은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이라며 "특히 수출부진과 더불어 제조업가동률이 정상수준보다 낮아 4분기 하방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 위기 신호탄, 97년 경상수지 적자 VS 2017년 부채
97년 외환위기 진원지는 경상수지 적자였다. 11월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아무도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1996년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에 달했다. 1992년 629억달러였던 대외 지불 부담은 1996년 1643억달러로 연평균 27% 증가했다. 대부분 금융회사의 외화 부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16년과 2017년 한국경제의 위험징후는 '부채'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외국은행이 국내 은행과 기업 등 국내 거주자에게 빌려준 돈(익스포져)은 2580억5400만 달러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외채 만기 연장 중단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2008년 1년 동안 무려 코스피가 40.7% 폭락하는 경험을 했다. 당시 국내 은행의 외채 만기 연장이 중단되면서 2008년 9월부터 12월까지 넉 달간 462억 달러 규모의 외국 자본들이 빠져나갔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200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40%나 하락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말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295조8000억원이다. 2분기 말과 비교해 38조1700억원 증가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보미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은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면서 "국내 기업은 위험에 따른 파급 효과를 고려해 외화부채를 줄이고 환위험 관리를 통해 유동성을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최악 시나리오는 자산 버블이 꺼지는 것이다. '자산 가격 폭락→소비 위축→기업투자 감소→경기 위축'이라는 악순환 고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물가 상승까지 겹친다면 경제는 한동안 고물가·저성장이 함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늪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중위소득 50~100%에 속하는 한계 중산층이 추가 붕괴할 것으로 염려된다.
글로벌 경제가 1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동조화한 점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미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중국을 '일자리 강도국' '환율조작국'으로 비난하면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또 달러를 찍어 국가 빚을 갚으면 된다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화는 뒷걸음 하고 있다. 실물경제에 이어 금융부문에서도 미국과 중국간에 '총성 없는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 G2(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애꿎은 한국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 신 행정부의 향후 정책방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1차 타깃은 중국이지만 우리나라에까지 충분히 번질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대응논리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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