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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51>지금 이 순간에도 무참히 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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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소원' 철거 현장.


서울 우이동 계곡을 찾을 때면 그 못미처에 있던 한 한옥이 떠오르곤 한다. 육당 최남선이 1941년부터 해방 뒤 친일부역 혐의로 반민특위에 검거될 때까지 8년을 머물렀던 고택 '소원'이 바로 그것이다.

안채 마룻대에는 그 집이 1939년 5월 29일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줄곧 고택을 관리해온 유모 씨에 따르면 "새로 지은 이후 여태 보수를 하지 않다가 빗물 받침을 새로 설치했을 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60여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한옥으로서 육당 최남선의 체취까지 남아 있는 집이었다.

강북구청은 고택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허사였다. 이유인즉슨 육당이 소원에 머무르기 시작한 1941년은 그가 신문 기고나 강연 등을 통해 조선 청년들에게 일제의 침략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을 시작한 시기이고, 1939년에 지어진 개량 한옥으로서 이미 원형이 크게 훼손된 데다 근대건축물도 아니니 보존할만한 건축사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문화재 등재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결국 10년 전인 지난 2003년 소원은 헐리고 말았다. 육당의 후손들이 "고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친일이라는 아버지의 상처가 자꾸 덧나는 것 같다"며 건설사에 팔아버렸는데, 문화재도 아니니 철거를 막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부정적인 역사라고 해서, 숨기고 싶은 역사라고 해서 모두 없애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그렇게 한다면 현재의 가늠자이자 미래의 지표가 되어야 할 역사의 현장들 가운데 앞으로 남아 있을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비단 적극적인 친일부역자의 집만 그런 것도 아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원효로4가 고택도, 'B사감과 러브레터'의 작가 현진건이 살았던 부암동 고택도 모두 사라졌다.

긍정과 부정의 역사가 오롯이 공존하는 최남선이 세상을 뜬 지 어제로 56년이 지났다. 소원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주상복합 빌라 앞을 지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무참히 헐리고 있는 문인들의 집, 나아가 역사의 현장들을 생각해 본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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