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도 은행원의 감정은 마이너스 통장처럼 소모된다. 하루 종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은행원의 삶은 불확실성과의 전쟁이다. 오늘은 어떤 손님의 몽니를 감내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어느 은행 지점에선 손님이 행원에게 "기다리기 힘들다"며 돈다발을 뿌리기도 했다. 은행원과의 인터뷰 내용을 문자메시지 화면으로 구성했다./그래픽=이범종 기자
#. 지난해 6월 A은행 여의도 지점. '툭.' 은행 창구에 통장 하나가 날아든다. 은행원이 고개를 들자, 중년 여성이 말한다. "출금해."
오늘도 은행원의 감정은 마이너스 통장 처럼 소모된다. 하루 종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은행원의 삶은 불확실성과의 전쟁이다. 언제 돈 계산이 틀려 내 돈으로 메워야 할 지 모른다. 오늘은 어떤 손님의 몽니를 감내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이번엔 몇 명에게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할까. 팔았던 상품이 신통치 않으면 모든 게 내 탓이다. 은행 창구 너머 걸려있는 문패. '직원전용'이란 뜻의 '스태프 온리(Staff Only)'. 은행과 은행원의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 보는 '뱅크&뱅커 스토리' 시리즈를 시작한다.
입행 5년차인 김 모씨(30·여)는 창구에서 무턱대고 "돈 빼"라고 명령하는 손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예요. 본인 통장 아니면 남편 것이죠."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설명하면 "가족인데 왜 안 되느냐"며 자리를 뜨지 않는다.
"'수수료를 왜 내야 하느냐'며 화내는 고객에게 솔직하게 말 할 수는 없잖아요."
예금 잔액이 많아 일정 등급 이상인 고객은 각종 수수료 혜택이 있다.
고객의 자존심과 은행원의 감정이 등가 교환되는 순간이다.
이럴 경우 김씨는 "그냥 은행이 달라서 그렇다"고 웃으며 말 할 수밖에 없다.
은행원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한다. 그러니 같은 질문 100개에 똑같은 대답 100번을 해야 한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도 힘들다.
김 씨는 "이렇게 은행원으로 살아보니 얼굴 보고 말하는 텔레마케터가 된 느낌"이라며 "그나마 고객이 내 앞에서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말 하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평소 듣는 욕보다 더한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짐작이다.
경기도 B은행에서 일하는 김 모씨(35)는 "타인 명의인데 가족이라며 거래 요구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고 한다. 그는 "서류에서 본인이 반드시 작성할 부분을 대신 써달라는 사람도 있다"며 혀를 찼다. 그는 이어 "순번 무시하고 다가와 무턱대고 본인 업무 먼저 처리해 달라는 사람까지…. 그럴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신씨는 "현금을 계수기를 통해 받아간 뒤에 "나중에 확인해보니 한 장이 빈다. 직원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며 객장에서 소리치며 보상하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손님들은 주로 어느 지점에 방문하는 걸까. 신씨는 "보통 시장이나 역 쪽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래도 일회성으로 거쳐 가기 때문에 힘든 부분들이 좀 더 많아요."
이들 은행원이 속으로 분을 삭이며 돈을 세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민원이 가장 크다"고 설명한다. "고객의 민원은 곧 은행원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며 운을 뗀 그는 "고객들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으면 은행 측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안다. 당국은 무조건 은행 잘못이라고 본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원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 인식이 그래요. '니들은 편하게 앉아 돈 많이 벌잖아'. 그런데 은행원은 돈 만지는 직업이라 언제나 금융사고에 노출됩니다."
"은행원 연봉이 높은 이유가 있습니다. 충분한 임금을 줘서 금전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거예요. 특히 은행원은 금융사고가 나면 자기 돈으로 메워야 하죠. 만일 잘못해서 50만 원이 비게 되면 자기 돈을 내는 식이니,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입니다."
얼마 전 아이를 낳은 한 은행원은 "내 자식은 절대 은행원 시키고 싶지 않다"며 "본인 결심이 확고하면 모를까…"라고 말을 흐렸다.
다른 관계자도 이건 알아달라고 했다. "은행들은 대개 오후 4시에 문을 닫아요. 고객들은 이때 우리가 퇴근하는 줄 압니다. 사실은 우리들, 그 안에서 야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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